TM MAGAZINE 2026년 5월 12일
알렉산드르 두긴의 다극주의|전통주의에서 제4의 정치 이론으로
현대의 다극주의는 알렉산드르 두긴의 사상이 떠받치고 있다. 지하 살롱에서 전통주의의 세례를 받은 그는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을 대신할 '제4의 정치 이론'으로서 다극주의를 제창했다. 누구나 지금 '근대'와 '서양'을 다시 보아야 하는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이 정의이고, 이란이 악.
아니, 이란이 정의이고, 미국이 악.
개헌이 정의이고, 호헌이 악.
아니아니, 호헌이 정의이고, 개헌이 악.
도대체 이원론 세계의 주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500년 이어진 서구적 제국의 환상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원론의 미국과 소련이 되었고, 냉전이 끝나면서 일원론의 미국 제국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양의 일원적 제국주의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너져 가는 패권에 아직도 집착하는 미국, 그리고 자기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서구.
그들의 병은 일원론도 이원론도 아닌 다극주의(Multipolarity)를 불러들였고, 격렬한 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일본 국내에서는 다극주의에 대해 들을 기회가 없으므로, 이번에는 서양의 종언과 함께 떠오르는 ‘다음 사상’을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의 맥락에서 보면 다극주의의 모태는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에 있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일원적인 미국의 제국주의가 지구를 뒤덮는 가운데, 1990년대 후반 러시아 총리까지 지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프리마코프 독트린’을 제창한 것이 기원입니다.
당시 외무장관이던 프리마코프는 “러시아, 중국, 인도가 연대하여 미국 일극의 패권을 억제하는 다극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에 지정학적 삼각형을 형성함으로써 경제·외교 면에서 미국의 일극 패권을 억제하려는 시도를 제안한 것으로, 훗날 BRICS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다극주의의 근간은 매우 단순합니다. 특정 국가나 민족이 만들어 낸 가치관은 어디까지나 지역 고유의 산물이며, 그 틀을 넘어 맥락이 다른 타 지역에 적용하는 것은 곧 침략이라는 생각입니다.
서양이 ‘보편’이라고 주장하는 민주주의, 개인주의, 평등, 평화, 사랑, 계급투쟁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즉 이것들은 서구의 일부 지역에서만 통하는 것이므로 세계로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말입니다. 분명하게 말하면, ‘인류에 보편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2026년 이란 전쟁에서 미국이 완전히 패배한 지금, 다극주의 제창자들은 서양이 타 지역에 더 이상 간섭하면 제3차 세계대전을 부를 것이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서 이란에서 손을 떼고, 이스라엘과 연을 끊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은 이미 미국 국내에서 주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서양의 논자들은 한때 리버럴한 서양 지식인이 가장 두려워하던 ‘다극주의’라는 용어를 공공연히 쓰게 되었고, “서양은 중동과 아시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어조를 높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 부근은 대륙의 움직임에 어두운 일본인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맥락입니다.
먼저, 다극주의 사상에서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구미 리버럴층에게서 ‘현대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가’라고 평가받는 알렉산드르 두긴입니다.
두긴의 이름은 구미 리버럴 진영에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이름’이며, 마치 『해리 포터』에 나오는 ‘그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볼드모트 같습니다.
그래서 구미 리버럴의 영향 아래에 있는 일본 매스미디어에는 그의 이름이 절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다극주의는 두긴의 사상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러시아 전 총리 프리마코프의 다극주의가 경제·외교적인 국가 인텔리전스의 실무적 측면을 맡았다면, 두긴의 다극주의는 문명론적인 사상을 맡았습니다.
1962년 소련 군 정보기관 고위 간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사상적 뿌리는 19601980년대에 존재한 지하 살롱에 있습니다. 모스크바에 있는 작가 유리 마믈레예프(19312015)의 아파트 한 방에서 열린 살롱은 지하 운동의 모태였고, 유진스키 서클이라 불립니다. 그들의 목적은 소련 체제에 반발하는 반동 분자의 조직화였습니다.
마믈레예프의 방에는 소련의 무신론과 유물론을 싫어한 반동적 지식인, 시인, 반체제 활동가, 신비주의자가 모여, 나치와도 통하는 유럽 신비주의를 축으로 오컬트 등 다방면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두긴은 이 위험한 세례를 원체험으로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그들이 이론적 지주로 숭배한 사람이 시인 예브게니 골로빈(1938~2010)입니다.
살롱의 중심인물이자 탁월한 사상가인 골로빈은 살롱 안의 토론을 통해 포스트 소련을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어떤 사상을 불어넣습니다. 그것이 전통주의입니다.
일본에서는 낯설겠지만, ‘근대라는 시대 자체를 인류사 최악의 탈선이자 쇠퇴로 보는’ 전통주의는 서양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전면 부정합니다. 전통주의는 노스탤지어에 젖은 회고주의가 아니라, 하늘이 내려 준 ‘영원한 진리’를 ‘전통’으로 다시 읽어 냅니다.
이는 소련이 세계 최초로 ‘과학적 무신론’을 표방하며 신앙의 모태인 교회의 파괴와 성직자의 추방을 조직적으로 벌인 데 대한 반동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근대에 제도화된 종교도 쇠퇴로 보고, 특정 교리에 의존하지 않는 본질적이고 굳건한 ‘존재의 근원’을 ‘전통’으로 생각합니다.
이 전통주의의 개조로 숭배받는 사람이 프랑스의 르네 게농(1886~1951)입니다.
게농은 살아 있을 때부터 위험인물로 여겨졌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인이면서도 근대 서구가 생각해 낸 ‘우상향의 직선적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판의 칼끝이 향한 것은 인류는 늘 진화해 왔다고 보는 영국 다윈의 진화론(다위니즘)이었습니다.
근대 서구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동양 사상과 이슬람 사상에 다가간 게농은, 역사는 언제나 순환(사이클)에 의해 형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일본인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지만, 근대 서구에는 이런 사고방식이 없습니다. 그 순간 동서 사상의 근본적인 차이가, 세계를 정복했다고 자만하던 서구인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전통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기에 접어들자 이웃 나라이자 적대 관계에 있던 이탈리아로 번집니다. 여기서 등장한 사람이 이탈리아의 사상가 율리우스 에볼라(1898~1974)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동양 사상의 세례를 받아 명상을 통한 정신 회귀를 주장한 게농과, 위험한 실천과 투쟁, 극한 상태의 자기 극복이 정신 각성에 필요하다고 주장한 에볼라로 나타납니다. 둘은 같은 전통주의지만, 선(禪)과 슈겐도(修験道)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일본도 속해 있던 삼국 동맹의 관점에서 에볼라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히틀러의 나치즘과 접촉했지만, 두 이데올로기와는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전통주의를 철저히 연구한 유진스키 서클은 ‘서양 근대주의의 확대=악’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살롱에서 근저의 사상을 키운 포스트 소련의 젊은이들은 1991년 12월 소련 붕괴 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두긴은 소련에서 추방되어 뉴욕과 파리에서 17년이나 망명 생활을 한 작가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와 함께 1993년 5월 ‘민족볼셰비키당(NBP)‘을 결성합니다. 극우와 극좌를 통합한 과격한 운동을 NBP에서 펼치던 중, 그는 1997년 『지정학의 기초』를 발표합니다. 이 책은 소련 붕괴 후 러시아군과 정치 엘리트의 성서가 되는데, 오늘날의 유라시아주의로 이어지는 한 권입니다.
반(反)리버럴리즘, 반미·반글로벌리즘을 내걸고 혁명 정신을 찬양하는 NBP는 소련 붕괴 후 정체성을 잃은 러시아인에게 숨결을 불어넣었지만, 한편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치명적인 사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러시아를 유라시아 제국으로 부활시켜 근대 서양을 끝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두긴과, 혁명에 살며 반체제 운동을 목적으로 계속 삼은 리모노프는 목적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결별은 1998년경 표면화되었지만, 20세기가 끝나는 1999년 연말에 혜성처럼 나타난 ‘무명의 인물’로 인해 결정적이 됩니다.
그것이 푸틴입니다.
1999년 8월 옐친 대통령에게 총리로 지명된 푸틴은 12월 31일 대통령의 전격 사임으로 단숨에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라섭니다. 사실 이때까지 푸틴은 러시아 국내에서조차 거의 무명이었습니다. 2000년 1월 다보스 포럼에서 해외 기자가 러시아 측 패널들에게 “푸틴이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아무도 푸틴이 누구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 움직임에 호응하여 두긴은 유라시아 제국 부활의 아바타로서 푸틴을 보았지만, 리모노프에게 그런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결별했고, 리모노프는 202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옛 동지 두긴을 ‘체제의 개’라고 비판했습니다.
두긴 다극주의의 주안점은, 미영이 펼치는 글로벌리제이션(해양 세력)에 맞서 유라시아 대륙을 대륙 세력으로서 대항적으로 재정의하고, 그 중심에 러시아가 서야 한다는 주장으로 관통되어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그가 20세기를 지배한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을 모두 근대 서양이 낳은 인류사 최악의 실패작으로 잘라 내고, 이를 대신할 ‘제4의 정치 이론’으로서 다극주의를 제창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다극주의는 위험 사상이 아니라, 각 문명 고유의 전통과 가치관에 기초한 통치 원리입니다. 다만 일원적 세계관에 따른 특권을 누려 온 서양인만은 예외이며, 그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사상이 됩니다. 두긴의 사상은 당시부터 서양의 보편적 가치 강요를 답답하게 여기던 이란, 중국, 인도, 튀르키예, 구미의 우파 세력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늘날 ‘자국 제일주의(○○ 퍼스트)‘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은 그의 다극주의입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주도의 일극주의에 맞서 온 두긴이지만,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2014년 우크라이나 분쟁입니다. 미국 CIA가 정권을 전복시켜 미국의 괴뢰 정권을 낳은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해 여러 차례 살육을 입에 올렸다가 모스크바 국립대학 교수직에서 해임된 두긴이지만, 쇠약해지기 시작한 미국에 대한 세계적인 혐오와 불신은 오히려 그의 명성을 높이는 호기가 됩니다.
그 결과 더 이상 두긴이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에 의한 암살 계획이 진행됩니다. 그렇게 2022년에 발생한 것이 두긴을 표적으로 한 폭탄 테러입니다. 노려진 것은 두긴의 차였지만, 우연히 다른 차를 타서 목숨을 건진 두긴 대신, 장래가 촉망되는 사상가로 주목받던 딸 다리야가 희생됩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두긴은 딸의 죽음을 ‘서양과의 문명 전쟁에서의 순교’로 규정하고, 슬픔을 안은 채 사상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 갑니다.
지금도 두긴의 이름은 구미 리버럴 진영과 그 영향 아래 있는 일본에서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란 전쟁이라는 미국의 치명적 패배로 인해, 공공연히 두긴에 의해 승화된 ‘다극주의’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두긴이 교묘한 것은, 서양인에게도 다극주의를 스며들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친숙한 20세기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개념을 늘 끌어오고,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을 이론적 지주로 편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써 다극주의를 미국화, 유럽화하는 길을 열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탁월한 사상 행위 덕분에 오늘날 미국과 유럽은 다극주의의 진원지가 되었고, 기존의 리버럴도 보수도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되었습니다.
결국 다극주의에 대한 찬반은 차치하고, 우리 모두가 지금 ‘근대’와 ‘서양’을 각각 다시 돌아봐야 하는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다극화 세계의 파도는 이미 밀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 서양의 영향 아래 편입된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의 역사를 다시 보고, 다음 나라 만들기를 생각하는 것이 절대 조건입니다.
원래 ‘흑과 백’으로 사물을 단정하는 이원론은 1868년 이전의 일본에는 없었습니다. 현재 국제적으로는 이란 전쟁, 국내적으로는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이원론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보면,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이미 피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개헌도 호헌도 같은 씨름판에 서 있다는 점에 차이가 없으므로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원론의 귀결은 반드시 참사에 이릅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이원론이 아닌 세계를 살아온 귀중한 일본인. 지금 우리 일본인이 세계에 대해 지는 책임은 ‘흑과 백’이 아닌 길을 서양에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근대 서양의 총아가 된 일본.
우리는 서양에 종지부(引導)를 찍어 줄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 성패가 앞으로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