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숲Vol.17

TM MAGAZINE 2026년 8월 18일

주희는 친민(親民)을 신민(新民)으로 바꾸었다|왕양명의 내외불리(內外不離)가 주자학의 순서를 무너뜨린다

『대학』 삼강령의 '친민'을 주희는 '신민'으로 고쳐 읽었다. 스스로를 닦아 마친 사람이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순서의 철학이다. 왕양명은 명덕을 밝히는 것이 곧 백성을 친애하는 것이라 설하여 이 순서를 무너뜨렸다.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이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 하지 않고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한다. 그것이 유학의 성인이 이른 경지라고 이 코너의 첫머리에 썼습니다. 이번에는 그 너머에 있는 경지를 아주 조금 엿보려 합니다.

안에서만 완결되는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완결은 자기만족을 불러올 수는 있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여기를 묻는 일이, 선(禪)이나 도교로는 왜 세계를 바꿀 수 없는지를 뿌리에서부터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이 지점을 가장 날카롭게 파고든 인물이 왕양명(王陽明, 1472~1529)이었습니다.

논쟁의 무대가 된 것은 『대학(大學)』입니다. 『대학』은 원래 유학의 중요한 경전인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으나, 송나라 때 사서(四書)의 하나로 올라서면서 동아시아 교양의 입구로 자리 잡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 첫머리에 유명한 삼강령이 있습니다.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친애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

명명덕(明明德)이란 본래 갖추어진 덕을 흐림 없이 드러내는 것. 친민(親民)은 백성을 친애하는 것. 지선(至善)은 그 도달점입니다. 이 해석의 문제는 두 번째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유학을 이야기할 때, 이 두 번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사상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주목할 지점입니다.

송나라는 유학이 폭발적인 복고를 이룬 시대였습니다. 그 중심인물이었던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는 북송 정이(程頤, 10331107)의 설을 이어 이렇게 주석을 달았습니다. “친(親)은 마땅히 신(新)으로 지어야 한다.”

친애한다는 뜻의 ‘친(親)‘은 새롭게 한다는 뜻의 ‘신(新)‘이 잘못 적힌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친민’이 아니라 ‘신민(新民)‘으로 바꿔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주희 고유의 사상을 세우려 했습니다.

고작 한자 한 글자를 바꾸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한 글자가 세계가 갈라지는 단절이 되어, 이후 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주희의 계통을 잇는 주자학과 왕양명의 계통을 잇는 양명학은 사상의 토대 자체가 다릅니다. 아래에 둘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 먼저 스스로 명덕을 밝히고, 그다음에 그것을 남에게 미쳐 낡은 때를 씻어 내게 한다(주자학)
◯ 명덕을 밝히는 것이 곧 백성을 친애하는 것이다(양명학)

여기서 보면 주자학이 지리(支離)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자학에서는 ‘명명덕’이 근본(本)이 되고 ‘신민’이 말단(末)으로 놓이기 때문입니다. 본말이 있다는 것은 선후가 있다는 것이고, 안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 닦은 자가 ‘다음 단계’로서 아직 더러운 자를 새롭게 한다. 이 순서가 선 순간, 자신은 주체의 쪽에, 백성은 개량되어야 할 무지한 대상의 쪽에 나뉘어 놓입니다. 위아래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희가 이런 수를 쓴 것은 여기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사상이 지리를 전제로 하고 있었기에, 여기서 ‘친민’이 ‘신민’으로 옮겨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글자를 바꾸는 일은 유학에서는 엄청난 의미를 지닙니다. 가르침이 근본적으로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세계가 일변한다고 해도 좋습니다.

다시 말해 주자학은 순서의 철학입니다. 그리고 절차가 서는 사상은 법 제도와 잘 맞기 때문에 반드시 체제에 채용됩니다.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자학에 달려든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만큼 훌륭하고 완성된, 통치에 걸맞은 철학은 달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주자학은 조용히 일본 관료 제도의 절대적 철학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왕양명이 평생을 걸고 무너뜨린 것은 바로 이 순서(지리)였습니다. 만년인 1527년, 제자들에게 구술한 『대학문(大學問)』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명덕을 밝히는 것은 반드시 백성을 친애하는 데 있고, 백성을 친애하는 것은 곧 그 명덕을 밝히는 방법이다.

명덕을 밝히는 행위는 반드시 백성을 친애하는 행위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백성을 친애하는 것이 그대로 자신의 명덕을 밝히는 일이라는 것. 안이 먼저이고 밖이 나중인 것이 아닙니다.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입니다. 다시 말해 내외불리(內外不離)입니다.

양명은 이를 체(體)와 용(用)으로 말했습니다. 명덕은 친민의 체이고, 친민은 명덕의 용이다. 체와 용은 둘로 갈라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의 안과 밖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명덕을 밝힌다고 하면서 백성을 친애하지 않는 것은 불로(佛老)의 견해이지 참된 명덕이 아니라고 갈파했습니다. 불교(특히 선종)와 도교가 목표로 하는 내적 완성의 도달점을 유학의 편에서 불충분하다고 단정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가다듬고, 맑디맑은 경지에 이르러, 거기서 만족한다. 분명 이는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이후 서양 세계에서 선이 한낱 마인드풀니스로 전락한 일에서도 분명하듯, 이 한 가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자기만족입니다.

그것은 고결해 보이지만 독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와 한 번도 섞이지 않은 채 완성된 내면 따위는 참된 내면조차 아닙니다. 이것이 양명학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양명학은 불교적 은둔을 허용하지 않고, 도교적 무(無)에 잠기는 태도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양명학이 양명학인 까닭은 이 절대적인 불리(不離)에 다 담겨 있습니다. 안의 명명덕과 밖의 친민이 늘 서로를 매개하고 있다. 어느 한쪽만 떼어 내는 순간 둘 다 죽는다. 이것이 양명학이며, 본래의 유학이었습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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