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쓰카미 계획 연구소Vol.8

TM MAGAZINE 2026년 6월 16일

신은 말이 아니라 외포(畏怖)라는 원체험에 깃든다|모토오리 노리나가와 산리쿠 앞바다

신은 설명하면 멀어지는 존재이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원체험에 바탕을 둔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신이란 범상치 않게 뛰어난 덕이 있어 두려운 것을 모두 가리킨다고 논했다. 산리쿠 앞바다에서 친구가 느낀 '외포'의 원체험에 신이 깃들어 있다.

신이란 무엇일까.
지난주 배를 타고 산리쿠 앞바다로 나가는 길에 친구와 거듭 나눈, 신의 존재에 대한 대화. 신은 설명하면 멀어지는 존재이지만, 개인적으로 신에 대한 이해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원체험(原體驗)에 바탕을 둔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옛 전승을 엮은 『고사기(古事記)』(712년)와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에는 ‘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도 없고 정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8세기 전반까지의 선조는 신에 대한 물음이나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물음을 던지는 경지에 신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단계에서 신에 대한 물음이 떠올랐을까. 역설적이지만, 신에 대한 물음이 각자 안에서 자각되었을 때 신은 모습을 감춘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신화에서도 첫머리에 등장하는 창조신 아메노미나카누시, 다카미무스히, 가미무스히, 우마시아시카비히코지, 아메노토코타치, 이른바 ‘별천신(別天つ神, 고토아마쓰카미)‘이라 불리는 다섯 기둥의 신들은 ‘은신(隱身, 가쿠리미)‘으로 표현됩니다.

전환점은 불교 전래입니다. 새삼 생각해 보면, 신앙과 기도의 대상이 이론화되지 않았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주조한 불상과 웅장한 사찰을 갖춘 종교를 마주했을 때의 심리적 충격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균열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불교 전래는 538~552년경이라고 하는데, 뿌리내리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대륙 종교와의 접촉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태어난 것이 중세의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입니다. 이는 귀족과 황족 같은 위정자를 교단에 끌어들인 승려들이 서민에게 불교를 널리 퍼뜨리는 보급 단계에 들어섰을 때, 서민에게 낯익은 관념을 이용하는 방법을 궁리해 낸 데서 시작됩니다.
이때 불교의 신앙 대상인 부처와 보살이 일본의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임시 모습(수적, 垂迹)‘으로 나타난 것이 신이라고 자리매김하고, 그 ‘본체(본지, 本地)‘는 부처라고 이론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체를 갖지 않던 신이 부처를 매개로 실체화되었다는 점, 그리고 우상 숭배에서 표리의 관계로 회수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신은 부처를 통해 혈육을 얻었고, 신앙 대상으로서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 낼 모습을 얻은 것입니다.

본지수적설은 효과를 발휘하여 아마테라스는 밀교의 대일여래, 하치만신은 아미타여래 등으로 재정의되어 갑니다. 이 신불 혼합의 결과, ‘신과 부처’가 이원적 세계에서 이야기될 토양이 형성되었습니다.
이원론인 이상 반전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신과 부처의 관계에 반전을 가한 이가 무로마치 시대의 신도가 요시다 가네토모(吉田兼倶)였습니다.

교토시의 성역 요시다산에 본궁을 둔 요시다 신도(유일신도)의 창시자가 된 요시다 가네토모는 본지수적설을 뒤집어, 신도가 근본(종자)이고 유교는 가지와 잎, 불교는 꽃과 열매에 지나지 않는다고 갈파합니다. 이를 ‘근본지엽화실론(根本枝葉花實論)‘이라 칭한 가네토모는 신을 만물의 근원에 다시 놓음으로써 후세에까지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반(反)본지수적의 입장에서 독자적인 교의를 설한 카리스마 종교가 요시다 가네토모에 의해, 신도에서 모든 것이 파생되었다는 새로운 종교적 가치관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과 신도는 부처와 불교에 의해 종교적으로 살이 붙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이원적 토양은 신의 실상에서 멀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은 말로 논할 수 없기에, 말을 쓰는 순간 화자를 통해 시대마다의 교의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변용을 입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의 육체입니다.

그 뒤 불교의 영향이 쇠퇴하는 에도 시대에 들어서자 힘을 얻은 유교를 배후에 둔 유가신도(儒家神道) 등이 등장하여 신이 유교 정신과 결부되기도 했는데, 그 반동으로 등장한 국학의 대가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신이란 천지의 신들이나 신사의 어령(御靈)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비롯해 새와 짐승, 나무와 풀, 바다와 산에 이르기까지 심상치 않게 뛰어난 덕이 있어 ‘가시코키(可畏き, 두려워 우러러야 할)’ 것은 모두 가리킨다고 논했습니다.

노리나가가 뛰어났던 점은, 신은 인간의 ‘이치(理)‘로는 잴 수 없는 불가지의 것이며 두뇌로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데 모두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신의 정체를 ‘가시코키 것’으로 파악한 감성은, 노리나가가 머리가 아니라 원체험으로 신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당시도 옛날도 신을 논하는 지식인은 원체험을 갖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고, 노리나가처럼 원체험을 언어화하는 일은 없이, 어디까지나 자신이 살던 시대의 성격에서 영향을 받아 논하는 것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본래 신을 말하는 데 말은 필요 없습니다.
그 뒤로도 신은 숱하게 이야기되어 왔지만 영 와닿지 않는 것은, 누구나 지식으로 신을 말하기 때문이며 거기에 지식 이전, 말 이전의 원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친구가 들려준 경험은 신이 무엇이며 누구에게 존재하는지를 생생히 보여 줍니다.

신은 학자의 머릿속에도 책에도 존재하지 않고, 땅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존재합니다.
땅이 다르면 자연환경도 다르고 풍속도 다릅니다. 그래서 일본은 야오요로즈의 신(八百萬の神)이며, 장소마다 무수한 신이 다원적으로 공존해 온 것입니다.

서쪽은 오우 산맥, 동쪽은 기타카미 산지로 둘러싸인 기타카미 분지에서 나고 자란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불렀다고 말합니다. 그 강한 의지에 이끌려 배를 사고, 정기적으로 홀로 산리쿠 앞바다로 나가 조용히 시간을 보냅니다.
엔진을 끄면 사방이 파도 소리에 감싸이고, 웅장한 리아스식 해안의 절벽이 해면 위에 자리합니다. 다른 배는 없고, 광대한 바다 한가운데 단 혼자 몸을 두는 경험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원시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그 순간 그는 ‘외포(畏怖)‘를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쾌한 감각이 아니라 오히려 돌아갈 곳으로 돌아온 감각이며, 혼이 공명하는 것입니다. 노리나가가 말했듯이 친구가 바다에서 품은 원체험은 ‘이치’로는 잴 수 없는 불가지의 것이며, 그것이 신의 조화입니다.

저 자신도 이른 아침의 시라카미 산지 숲에 서 있거나 땅거미에 감싸인 돗토리 사구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 순간 말로 할 수 없는 편안한 외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외포는 신과의 접촉이며, 나뭇가지의 흔들림, 불어 지나가는 바닷바람, 거센 파도 소리가 모두 신의 말로 번역됩니다.

근대 이후 신은 신앙 대상으로서의 기도를 잃고, 분석 대상으로 논해지는 존재로 전화했습니다. 이 순간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도 옛날도 신은 외포의 원체험 속에 다원적으로 실재합니다.

아무리 신화나 옛 전승을 읽어도 신을 느낄 수는 없지만, 홀로 이른 아침의 숲이나 땅거미에 싸인 해안, 새벽어둠의 큰 바다에 몸을 둘 때 인간은 말로 할 수 없는 외포를 느낍니다. 그 원체험을 지니고 신화와 역사에 임하는 것.
왜냐하면 그 순간만은 태곳적부터 변함없는 바람이 불고, 거기에 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란 인류가 지닌 공통의 기억이지만, 막연한 불안이기도 하기에 인류는 그 기억을 봉인한 채 살아왔습니다. 다시 말해 원시의 기억은 누구나 안고 있지만 덮여 가려져 있습니다.

친구의 원체험을 들으며 신이 깃드는 산리쿠 앞바다에 나서자, 예전에 해인족(海人族)이 느꼈을 고요하고 용서 없는 외포가 지금도 바다 위를 떠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영어로,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일본 시간). 좋아요도 댓글도 순위도 없습니다. 에세이와 당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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