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쓰카미 계획 연구소Vol.20

TM MAGAZINE 2026년 9월 8일

신의 이름은 구로시오를 따라 옮겨 간다|아와국의 야쿠라히메와 도요타마히메

도쿠시마시의 바다와 맞닿은 산에는 도요타마히메와 『고사기』에도 『일본서기』에도 등장하지 않는 아와 고유의 신 야쿠라히메가 모셔져 있다. 구로시오를 따라 신의 이름이 옮겨 가고 있다. 장소가 바뀌면서 이름이 바뀌고, 이 순간 행위가 어긋난다.

일본을 생각할 때 고대 아마(海人)족을 기층에 놓는 것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일본 열도를 둘러싼 조류와 해류, 계절풍과 하나가 되면서 문화의 초석을 깔고, 땅마다 고유한 구니쓰카미(国つ神)와 선(線)에 사는 따르지 않는 신(まつろわぬ神)을 조용히 일으켜 세웠는가.

이 수수께끼를 근대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그려 낸 것이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의 ‘마레비토(まれびと)‘였습니다. 바다에서 찾아오는 내방신에서 시작된 모습을 따져 볼 것도 없이, 애초에 일본 열도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이상, 바닷물의 흐름을 철저히 알지 못하는 한 문화도 역사도 결국 겉핥기에 그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대 일본이 안고 있는 하나의 우려로 보입니다.

대체 왜 사람들은 이 이해를 잃어버렸을까요. 이번에는 거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마족과 관련된 ‘아마’라는 소리는 오래된 야마토 말에서 ‘바다’를 가리켰습니다. 다만 이 읽는 법이 위험합니다. 어디까지나 막연한 현재의 해석일 뿐이며, 한때의 다원적인 고대 일본을 생각하면 단순히 바다를 가리키는 한 단어가 아니었고 고유명사도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것은 거기에 어떤 행위가 있었고, 실제 일상생활에서 쓰였다는 뜻입니다. 그것들을 아우르는 말이 ‘아마’였습니다. 문제는 옛 말이 반드시 행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지금 사람들이 완전히 놓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 일본인의 사고에 나타난 이 구조적 어긋남이 아마도 모든 것을 일그러뜨렸고, 참된 일본을 스스로 지워 버린 근본 원인입니다.

생각해야 할 것은 『고사기(古事記)』 편찬 시대에 오노 야스마로(太安万侶)를 비롯한 편자들이 소리를 문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왜 그토록 골머리를 앓았는가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미 8세기 전반 시점에 오래된 말의 본뜻과 기원 같은 것이 거의 끊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야마토 관인들의 차원에서는’ 이해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각 장소와 마을에서는 그 기원이 이어지고 있었고 본뜻은 살아 있었습니다.

여기에 일본의 다원적인 소리의 세계가 흔들려 온 자취가 침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마타이국(邪馬台国)의 비정지가 규슈였다느니 기나이였다느니 벳푸였다느니 아와였다느니, 오늘날에는 무수히 갈라진 세계가 주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예외 없이 모두 ‘움직임(행위)‘을 제거하고 지상에서 그 한 점을 갈라내어(支離) 보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비정설이 안은 문제도 뿌리가 같습니다. 그것은 야마타이국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세기의 모습을 근대의 시각으로 의심 없이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심각한 어긋남이 일어납니다. 진짜 문제는 야마타이국의 소재가 아니라, 거기에 사람들이 향하는 사고의 지반(地盤)이 근대에 의해 덮여 가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바다의 시점으로 보면 갈라짐(支離)은 없습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불리(不離)로서 다원적으로 감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유동적 시점’이라 부른다면, 그 점은 지상에 박힌 말뚝처럼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선 위에 있는 지금 여기의 상태를 점이라 부를 뿐임이 보입니다. 다시 말해 출발도 도달도 없습니다.

여기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의 ‘장소의 논리’를 가져오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감싸이는 것이 감싸는 것에 의해 감싸이는 모습. 이 양태야말로 야마타이국이고, 야마토이며, 와(和)이고, 마침내 일본이라는 국가를 만들어 낸 환상의 맨몸입니다.

이것들을 실장했을 때 열쇠가 되는 것이 여신들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쫓아온 것 중에서도, 예를 들어 규슈 쪽으로 말하자면 부요 해협(豊予海峡)의 하야스이히메, 아오시마(青島)의 도요타마히메, 니치난(日南)의 아히라쓰히메, 오스미 하야토(大隅隼人)가 모신 구시라(クシラ)의 여신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곳의 현장에 서 보면, 구로시오(黒潮)를 따라 아마족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의 해상도가 꽤 높아집니다.

그리고 절대로 갈라서(支離) 보아서는 안 됩니다. 불리의 진상을 전하듯이, 지금 고대 아마족의 구로시오 항로의 움직임이 규명되는 큰 첫걸음이 마침내 내디뎌지고 있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존재가 도쿠시마현(옛 아와국)입니다.

작년에 찾아간 도쿠시마현 가이후군 가이요초(海陽町)에서 발견된 전방후원분(다라 고분 1호분)은 도로 개발 계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었지만, 무사히 작년 후반부터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아난시(阿南市)의 무인도 마이코지마(舞子島)에 있는 소멸 직전의 고분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조사가 들어갔습니다.

이것들을 갈라진 점으로 읽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성과와 함께 보아야 할 곳은 실은 조금 북상한 도쿠시마시 쪽이기 때문입니다. 이 도쿠시마시의 바다와 맞닿은 산에 모셔져 있는 것이 도요타마히메와, 또 한 분의 수수께끼에 싸인 여신입니다. 이름을 야쿠라히메라고 합니다.

야쿠라히메는 『고사기』에도 『일본서기』에도 등장하지 않는 신으로, 완전히 아와 고유의 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로시오를 따라 ‘신의 이름이 옮겨 가고(転移)’ 있다는 점입니다.

요컨대 서로 다른 신들이 갈라져서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분명 부족이 달랐다는 것은 그 말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아마족은 바다를 이동하는 성질 때문에 이 부족의 차이가 극한까지 같은 질에 가까워집니다. 유명한 규슈의 무나카타(宗像), 아즈미(阿曇), 스미요시(住吉) 등의 아마족이 열도 전역에 걸쳐 영향을 남긴 것이 참모습입니다.

그래서 각지에서 아마족의 신들은 상당한 정도로 같은 질이 되어(習合) 있습니다. 이 감성이 꽤 까다로운 문제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불습합 이전에, 애초에 원초적으로는 신들의 습합이라는 역사가 매우 오랜 기간 이어졌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가 신화로 알고 있는 신들은 어디까지나 그 수천 년의 세월 끝에 습합된 ‘큰 신’의 모습일 뿐입니다.

실제로 이 아와의 여신들이 놓인 배치에는 그것들을 감싸 안듯이(習合), 산간부인 가미야마초(神山町) 쪽에 아와국의 조상신 오오게쓰히메가 모셔져 있고, 하천을 통해 연안부의 도요타마히메, 야쿠라히메와 멋지게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짚어 가고, 동시에 조류와 해류, 계절풍의 순환 속에서 읽을 때, 장소가 바뀜으로써 이름이 바뀌고 있음이, 곧 소리가 옮겨 가고 있는 고대의 모습이 비로소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순간 행위가 어긋난다는 점입니다. 이 행위의 어긋남이 신들의 다원적 성격을 낳은 참된 모태입니다. 장소(관계의 생성)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배치를 제대로 영유하고 사물을 생각하지 않는 한 고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고대 일본은 언제까지고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상태에서 지금의 일본에서 무언가를 이루려 해도, 그것은 일본을 가장한 ‘일본이 아닌 것’이기에 결과적으로 일본 문화는 쇠퇴하고 일본인의 능력도 닫혀 갑니다.

지금 보아야 할 것은 틀림없이 구로시오입니다. 이것들은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영어로,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일본 시간). 좋아요도 댓글도 순위도 없습니다. 에세이와 당신뿐.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