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숲Vol.14

TM MAGAZINE 2026년 7월 28일

학(學)이란 깨어남이다|설문해자의 효(斅)와 주희의 효(效)가 갈라놓은 유학

『설문해자』는 학(學)의 본자 '斅'를 '깨달음이다'라고 푼다. 배운다는 것은 깨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희는 『논어집주』에서 학에 '效'를 대응시켜, 먼저 깨어난 사람의 행동을 본받는 것으로 해석했다. 단 한 글자 훈고의 차이가 유학의 커다란 논쟁의 핵심이 된다.

학(學).
이 한 글자는 본래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늘 흥미롭게 느끼는 것은, 안다고 생각하는 말일수록 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상징이 바로 이 한 글자에 응축되어 있는 듯합니다.

지금 이 글자의 뜻을 물으면 많은 분이 지식이나 기능의 습득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르침을 받는 일을 가리킵니다.
분명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편으로, 이 학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두고 수천 년 가까이 치열한 사유를 이어 온 사상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것이 유학입니다.

유학은 왜 유독 ‘학’을 끝없이 탐구했을까요. 거기에는 유학의 성인 공자(孔子, 기원전 551~기원전 479)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자의 말로 전해지는 『논어』 스무 편 가운데 맨 처음에 놓인 글자가 바로 ‘학’입니다.
『논어』는 수백 개나 되는 공자의 말을 전하는데, 왜 이 글자가 맨 앞에 놓였는지, 그 이유는 전해지지 않고 『논어』를 엮은 학파의 의도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훗날 유학은 유학, 도학, 성학, 정주학(일본에서는 주자학), 왕학(일본에서는 양명학) 등 갖가지로 불리지만, 그래도 끝이나 중심에는 ‘학’이 새겨져 있습니다. 유학의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유교라고도 부르지만, 유학이지 유교가 아닙니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학’이지 ‘교’가 아니라는 것, 그것이 공자 이래 유학이 쌓아 온 정신적 유산입니다.

그렇기에 ‘학’을 묻지 않으면 본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논어』 제1장 제1구는 “學而時習之”로 시작하고, 편 이름도 거기서 따와 ‘학이(學而)‘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유학의 모든 문제는 ‘학’이라는 한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처음부터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서기 100년경에 이루어진 가장 오래된 한자 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편자 허신(許慎)은 ‘학’의 본자인 ‘효(斅)‘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斅는 각오(覺悟)이다.

본래의 각오란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이 뜨이는 것, 모르고 있던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곧 눈이 뜨여 모르고 있던 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에 따라 사는 것. 이 사는 마음가짐이 마음을 굳게 먹는다는 의미의 각오로 오늘에 남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같은 후한의 『백호통(白虎通)』도 “학의 말됨은 깨달음이다. 아직 알지 못하는 바를 깨달아 아는 것으로써이다”라고, 거의 같은 말투로 이야기합니다.

한나라의 훈고에서 학은 각(覺)이었고, 배운다는 것은 깨어나는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천 년 넘게 지나 중국이 대문화의 시대인 당, 송으로 옮겨 가는 가운데, 훗날 에도 시대의 막번 체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주희(朱熹, 주자, 1130~1200)가 등장하자 이 해석이 크게 달라집니다.
주희는 『논어집주(論語集注)』의 첫머리, 바로 ‘학’의 주석에서 각오가 아닌 다른 글자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학의 말됨은 본받음(效)이다.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나, 깨달음에는 앞뒤가 있다.

풀어 보겠습니다.
‘效’는 흉내 낸다,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주희는 학을 자기 자신이 깨어나는 일이 아니라 “먼저 깨어난 자의 행동을 모방하는 일”로 해석했습니다.
물론 주희가 각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깨달음에는 앞뒤가 있다”고 말했듯이, 그는 깨어남에 순서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며 체제의 철학이 되기까지 한 주희의 생각에 따라, 나중에 깨어나는 자는 먼저 깨어난 자를 모방함으로써만 깨어나는 곳에 이를 수 있다고 해석됩니다.

이 한 수로 무엇이 움직였을까요.
유학이 최고의 도달점으로 삼는 성인의 자리입니다.
크게 둘로 갈라진 흐름을 정리해 두겠습니다.

◯ 학이 각(각오)이라면, 깨어나야 할 것은 자기 안쪽에 있다
◯ 학이 효(效, 본받음)라면, 본받아야 할 대상이 자기 바깥에 서 있다

단 한 글자의 훈고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단 한 글자의 차이가 훗날 유학의 큰 논쟁의 핵심이 됩니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 등장한 이가 명나라의 왕수인(王守仁, 왕양명, 1472~1529)이었습니다. 그에 의해 주희의 논점은 무화(無化)되고, 단숨에 공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대륙의 움직임은 이윽고 압축된 모양으로 에도 시대의 일본, 그리고 전전의 일본에까지 강렬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편, 결정적인 기록이 있습니다. 노나라의 군주 애공(哀公)이 “제자 가운데 누가 학을 좋아합니까” 하고 공자에게 물은 데 대한 대답입니다.
공자는, 안회(顔回)라는 이가 있어 학을 좋아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다. 지금은 더 이상 없다고 답합니다.

삼천 명이라고 전해지는 문하 가운데 학을 참으로 이해하는 자로 인정받은 이는 단 한 사람. 게다가 그 한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러나 볼 것은 거기가 아닙니다. 볼 것은 공자가 호학(好學)의 증거로 무엇을 들었는가입니다.
그는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곧 향해야 할 상대(자기 자신)를 향한 노여움을 다른 상대에게 퍼붓지 않는다. 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다. 책에 통달했다고도, 시를 외웠다고도, 지식이 풍부하다고도, 재능이 많다고도, 말솜씨가 좋다고도, 출세했다고도 공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유학의 본질이 있습니다.

호학이란 지식의 ‘양’이 아니고, 지위도 아니며, 마음의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유학의 개조인 공자 자신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한 글자를 묻는 것은 곧 유학 수천 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전제는 여기까지로 해 두고, 좀 더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곳까지 끌어와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학’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그것을 묻는 일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각도 효도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에도 시대 내내 많은 일본인은 학을 이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지에 인격자가 많이 나타났고, 정신적으로 매우 깊고 풍요로운 시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뀐 것은 문명개화 이후입니다.

메이지 5년의 학제 이후, ‘학’이라는 글자는 education이라는 서양어를 담는 그릇으로 돌려 쓰였습니다. 학교, 학력, 학위, 진학, 학습 도달도. 이 순간 모든 잣대가 양이 됩니다.
몇 시간 배웠는가, 무엇을 마쳤는가, 어떤 학위를 갖고 있는가, 어느 서열에 배치되었는가, 얼마나 책을 읽었는가, 얼마나 출세했는가. 공자가 호학의 조건으로 말한 것은 어느 것 하나 충족하지 못합니다.

물론 앞서 말한 주자학은 출세의 학문이 되었고,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채용한 일로 그런 성격이 강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명개화라는 것이 시작된 이래, 학은 분명히 일본인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이때 일본인의 교양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많은 분이 잊고 있지만, 전후 점령군은 유학의 가르침인 수신(修身)을 금지했습니다.
이로써 우리에게서 동아시아적인 학의 본뜻은 결정적으로 끊어졌고, 실제로 우리 거의 모두가 에도·메이지·다이쇼·쇼와 초기의 교양이었던 한문을 읽지 못합니다. 읽지 못한다는 것은, 일본인이 길러 온 천 년이 넘는 정신을 읽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선인들에게서 대대로 이어져 온 역사와의 단절입니다.

단 하나의 ‘학’이라는 글자.
유학의 경서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 한 글자를 철저히 생각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때 우리가 느끼면서도 말로 하지 못했던 위화감의 정체가 밝혀질 것입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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