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 MAGAZINE 2026년 5월 26일
응신천황은 옹립된 복합 씨족의 상징|고대 가와치와 우사 신궁의 수수께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약 4,800사의 하치만 신사의 본거지, 우사 신궁이다. 하치만 대신과 동일시되는 제15대 응신천황은 서로 다른 씨족끼리의 동맹으로 태어난 새로운 집단의 상징이었다. 도래·귀화·재래의 씨족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첫걸음이 응신천황의 존재에 담겨 있다.
일본 각지에는 신대(神代)에 기원을 둔 오래된 신사가 지금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대’란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에 기록된 신들, 혹은 창건 전승에 기원을 둔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고사(古社)의 존재는 땅을 다스리는 씨족의 정치력과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720년에 성립한 『일본서기』나 10세기에 성립한 『엔기시키(延喜式)』 진묘초(神名帳)에서는 신사의 격이 엄격하게 정비되어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신사의 격을 매겨 서열을 만드는 것이 정치 통제의 열쇠였다는 뜻입니다.
이것들은 당시의 ‘율령제(律令制)‘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율령제란 중국 당나라를 본뜬 고도의 국가 시스템의 원형인데, 일본 쪽에서는 7세기 후반 천무천황 무렵에 수입·구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7~10세기 무렵에 일어난 율령제의 영향으로, 오래된 기원을 지닌 신사가 크게 변질됩니다. 그 상징적인 상처를 남기고 있는 곳이 오이타현의 우사 신궁입니다.
구니사키반도와 스오나다를 마주한 영성 풍부한 곳에 자리한 우사 신궁은 하치만 총본궁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전국 최다인 약 4,800개 하치만 신사의 본거지입니다. 2위인 이나리 신사조차 약 2,700개이니, 하치만 신앙이 일본에서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八幡’은 ‘하치만’이면서 동시에 ‘야하타/야와타’이기도 하며, 한반도 신라에서 건너온 외래 신을 기원으로 합니다. 하치만 신앙이 가속적으로 퍼진 것은, 8세기에 성무천황이 주도한 도다이지 대불 조영이 난항에 빠졌을 때 ‘우사의 하치만 대신’이 전국의 신들을 이끌고 협력하겠다는 탁선을 내렸고, 그로써 무사히 완성된 데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메이지 이후의 일본에서는 하치만 대신의 기원이 외래에 있었다는 사실이 금기시됩니다.
금기시된 이유는 하치만 대신이 어떤 천황과 동일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15대 응신천황(応神天皇)입니다.
일본에서 ‘공백의 100년’이라 불리는 4세기 후반에서 거대 고분 축조가 시작되는 5세기 전반에 실존했다고 추정되는 응신천황은, 오사카 하비키노의 응신천황릉이 능묘로 비정되어 있습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아버지를 중애천황, 어머니를 신공황후로 자리매김하지만, 중애천황과 신공황후는 실존하지 않으며 전설 속 인물이라는 견해가 주류입니다.
특히 여왕 히미코와 겹쳐지는 신공황후는 『일본서기』에 ‘오키나가타라시히메’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신라·백제·고구려에 출병한 삼한 정벌이나 위(魏)·백제와의 관계 구축에 앞장선 용감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고사기』는 신공황후의 시조를 ‘신라국의 왕자’라고 적고 있어, 실상은 신라 왕족이 일본에 귀화한 후예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의문은, 부모로 자리매김된 중애천황과 신공황후는 실존성이 낮은데도 아들인 응신천황의 실존성만 인정되는 근거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지워진 역사’, ‘감추어진 역사’로 매력적으로 이야기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왕을 세울 때 ‘옹립(擁立)‘이라는 방법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혈통 등 공통 조상의 결속으로 뭉치는 단일 씨족의 시대라면 옹립 같은 합의 형성은 필요 없지만, 여러 씨족이 모여 큰 집단을 이루는 시대에 들어서면 특정 씨족의 뜻만 듣고서는 통치할 수 없으므로 합의 형성에 의한 옹립이라는 수단이 취해집니다. 지금으로 치면 민주적인 방법입니다.
중애천황과 신공황후는 어디까지나 특정 씨족의 상징입니다. 예를 들어 신공황후의 이름은 ‘오키나가타라시히메’인데, 비와호 북동쪽 지금의 마이바라시에는 예전에 오키나가씨(息長氏, 오키나가의 씨족)가 정치력을 쥐고 있었고, 인근 후쿠이현 쓰루가가 한반도계 도래인의 마지막 도착항이던 시대에 귀화 이민을 아울러 세력을 넓혔습니다.
덧붙이면 ‘쓰루가(敦賀)‘라는 호칭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한반도 가라국의 왕자 쓰누가아라시토에서 비롯되었으며, 쓰누가가 쓰루가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도 쓰루가역에 내리면 맞아 주는 것은 외래 왕자 쓰누가아라시토의 동상입니다.
이 쓰루가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비와호 북부에 이르고, 도래인은 호숫가를 따라 진출했습니다. 예전의 비와호 주변은 도래인 마을이 처마를 맞대고 늘어선 지역이었습니다.
그중 하나였던 오키나가씨는 6세기 전반에 재위한 계체천황을 훗날 배출했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시대가 있었습니다.
신화는 버릇이 있어 어렵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여기서는 오키나가씨라는 씨족이 훗날 ‘신공황후’로 상징되어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더해졌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중애천황도 같은 원리입니다. 요컨대 서로 다른 씨족이 ‘동맹(신화에서는 혼인이 됩니다)‘을 맺은 결과 태어난 새로운 집단이 아들 응신천황으로 배치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응신천황도 실존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씨족끼리의 동맹으로 새로운 세력을 낳았다는 뜻입니다.
이때 응신천황의 수수께끼가 떠오릅니다. 단순히 서로 다른 씨족 간의 동맹·복속이라면 태곳적부터 몇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응신천황은 상징적인 자리에 배치되었고, 공백의 100년을 거쳐 일본이라는 국가 형성의 초석을 놓은 당사자로 여겨지는 데다, 일본 최다 신앙을 지닌 하치만 대신과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이는 중애천황과 신공황후가 단일 씨족 수준이 아니라 이미 여러 씨족을 아우른 집단의 상징이었음을 시사하며, 뿌리가 다른 여러 집단이 처음으로 하나의 집단이 되는 결정적 순간이 응신천황의 존재에 담겨 있습니다.
즉 도래, 귀화, 재래의 씨족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뜻입니다.
새 시대의 진원지는 주로 오사카의 가와치, 나라 분지 서부 지방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지역들에서 고향, 혈통, 언어, 풍습, 문화, 기술이 저마다 다른 집단이 하나로 맺어지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중 가장 성공하여 대두한 것이 응신천황으로 상징된 가와치(지금의 하비키노, 후지이데라, 가시와라)의 세력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도래인과 관련된 전승이 많이 남아 있고, 여러 신사가 서로 다른 외래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통합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중애천황과 신공황후로 상징된 집단이며, 거기서 옹립이라는 형태로 대대로 수장(왕)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왕이 죽으면 왕을 배출한 씨족이 아닌 곳에서 후계자를 골라 즉위시키는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천황’이라는 호칭이 없었으므로 ‘대왕’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요컨대 천황은 단일한 혈통의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응신천황이 최초의 거대한 전방후원분에 묻힌 것은 이 시대가 새로운 상징이었기 때문인데, 다양한 기술을 지닌 집단이 통합함으로써 종래 불가능했던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음 대는 인덕천황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응신천황과는 다른 복합 씨족의 상징이며 지역의 패권은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황족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일본인에게도 이곳은 서로 다른 뿌리가 뒤섞인 진원지이며, 민족의 기원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 기억을 지닌 조상들은 훗날 외래 신들을 습합시킨 하치만 대신을 창생하고, 거기에 상징적인 대왕이었던 응신천황을 습합시켰습니다. 이후 그 후예가 전국 각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국 최다가 될 때까지 신앙(기억)을 이어 간 것입니다.
최근 밝혀진 유전자의 사실로 보아도 현대 일본인의 대부분은 고분 시대 사람들의 후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응신천황으로 상징되는 ‘대혼교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보며, 응신천황의 신앙은 상당히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한 외래도 아니고, 순수한 재래도 아니다.
더없이 일본적인 모습이 응신천황을 통해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가와치에서 비롯된 초기 국가, 초기 천황의 움직임이 멀리 떨어진 오이타의 우사에서 신격화되었을까요?
일본 최대의 수수께끼를 품은 우사 신궁. 이 고사를 읽어 내는 일이 일본의 근원을 규명하는 길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