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쓰카미 계획 연구소Vol.4

TM MAGAZINE 2026년 5월 19일

도미오마루야마 고분의 사행검과 방패형 동경은 제사에서 무력으로의 전환을 보여 준다

4세기에 조성된 도미오마루야마 고분에서 길이 약 285cm의 사행검과 세계에서 유일한 방패 모양 동경이 발견되었다. 검도 방패도 전투가 아니라 정치에 따르는 제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수장의 실권이 제사에서 무력으로 옮겨 가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4세기에 있다.

나라현 나라시 마루야마에 있는 도미오마루야마 고분(富雄丸山古墳). 오사카에서 이코마산(生駒山)을 넘은 야타 구릉(矢田丘陵) 북동쪽 산기슭에 자리한 거대한 원분(圓墳)이 지금 조용히 일본사를 크게 고쳐 쓰려 하고 있습니다.

발단은 2022년 12월, 고분의 조출부(造出部)라 불리는 돌출부에서 약 285cm에 이르는 세계 최대급의 거대한 철제 검과, 세계에 단 하나뿐인 방패 모양의 동경(銅鏡)이 발견된 일입니다. 사행검(蛇行劍)이란 검 자체가 뱀처럼 여섯 번 굽이치는 특수한 형상에서 붙은 이름인데, 같은 곳에는 길이 약 5m에 이르는 목관도 묻혀 있었습니다.

이후 목관 안에서 발견된 것은 세 장의 동경이었습니다. 동경이란 주로 야요이 시대에 부족의 무녀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쓴 도구인데, 흥미롭게도 도미오마루야마 고분의 목관에서 포개져 발견된 동경 세 장은 서로 다른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나는 중국에서 전한(前漢)이라 불리던 기원전 1세기 말경, 하나는 후한(後漢)의 2세기 말에서 3세기 전반, 하나는 삼국 시대 위(魏)가 존재하던 3세기 중반입니다.

다시 말해 같은 장소에서 포개져 발견된 동경 세 장은 제작 시기에 400년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마치 고대 중국사가 통합된 듯한 매장을 했던 것입니다. 고고학에서는 형상 등의 특징을 바탕으로 가장 오래된 것을 훼룡문경(虺龍文鏡), 그다음을 화상경(畫像鏡), 가장 새로운 것을 삼각연신수경(三角縁神獸鏡)이라 부릅니다.

이 삼각연신수경이라 불리는 것이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서 위나라 황제가 여왕 비미호(卑彌呼)에게 선물한 동경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실은 이 삼각연신수경은 아직도 수수께끼에 싸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삼각연신수경은 일본 쪽에서 500장이나 발견되었는데도 중국 쪽에서는 한 장도 출토되지 않았고, 거울의 거푸집도 공방 터 같은 제작 현장의 흔적도 일본·한반도·중국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나라가 동경을 비미호에게 보낸 것은 사실이겠지만, 위나라 제작 거울에 관한 어떤 흔적이 당시의 위나라나 위나라가 장악하고 있던 한반도 북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고, 알려진 것은 일본에서 대량으로 출토된다는 점과, 삼각연신수경의 제작 연대가 위나라 시대와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4세기에 축조된 도미오마루야마 고분은 일본사에서 ‘공백의 100년’이라 불리는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중국 쪽 『삼국지』 「위지 왜인전」은 3세기의 일본을 기록하고 『송서(宋書)』 「왜국전」은 5세기의 일본을 기록하고 있지만, 4세기는 중국과의 교류가 끊긴 시기에 해당하며, 중국 국내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사료에 일본의 일이 적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세기를 마친 5세기가 되면 갑자기 모즈·후루이치 고분군(百舌鳥・古市古墳群)과 같은 거대 고분이 축조되는 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공백의 시대에 구조적 전환점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제 조사에 바탕을 둔 실감으로는, 3세기대의 제사적 성격이 5세기대의 무력적 성격으로 변이하는 ‘사이’에 4세기 고유의 수수께끼가 있다고 생각하며, 상당히 대규모의 부족 이동이 일어났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대이동은 일본 열도에 그치지 않고 중국·한반도까지 포함합니다.
간단히 말해, 부족을 이끄는 수장의 실권이 제사에서 무력으로 옮겨 가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4세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도미오마루야마 고분에서 발견된 거대한 사행검과 방패형 동경입니다.

몇 번이나 굽이친 3m 가까운 검은 당연히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며 제사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무력에 바탕을 둔 정치적 실권이 어른거립니다. 마찬가지로 방패형 동경도 철제 방패처럼 실용적인 방어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제사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발견된 검도 방패도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에 수반되는 제사를 목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한편 3세기대에는 순수한 동경을 사용한 무녀 주도의 부족 제사가 주로 서일본에서 펼쳐졌지만, 방패형과 같은 무력을 시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이코마산 부근, 도미오마루야마 고분 지역에 존재한 부족이 ‘야요이 시대와 고분 시대’의 결절점을 살았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다시 말해 기원이 전혀 다른 종족이 이 땅에서 뒤섞였을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유전자 연구도 이미 조몬인·야요이인·고분인이 같은 종이 아니라 이종이었음을 밝혀냈습니다. 주로 야요이인은 동북아시아에 기원을 둔 종족, 고분인은 동아시아에 기원을 둔 종족이라고 하며, 현대 일본인의 대부분은 동아시아계 고분인의 후손으로 자리매김됩니다.
다만 이는 일본인의 조상이 중국계 한족과 동일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의 중국에도 한족 이외의 복잡한 민족 구조가 있었고, 한반도계 민족 등도 뒤섞이면서 일본 쪽의 선주 민족과도 교류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유전자 검사가 대중화되면 이 부분의 전모도 보이겠지만, 아마도 상당히 복잡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조몬인’이라는 단일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고 복수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며, 이 민족관의 재검토가 유전자 검사의 보급과 함께 요구될 것입니다.

현 상황을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 일본인의 유전자 구조는 고분계가 많지만 누구나 오래된 유전자를 일정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인의 실태는 단일 민족이 아니라 주로 세 가지 서로 다른 유전자가 융합해 있다는 데 있으며, 이 배분이 뿌리와 지역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이 복잡한 역사를 시사하듯, 400년이나 시대 차가 있는 동경 세 장이 안치된 목관의 피장자는 여성이었다고 추정되며, 야요이 시대가 끝나고 고분 시대를 맞이하는 구조적 전환점을 살았던 부족의 말로를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중국의 각 영광의 시대를 상징하는 듯한 동경이 포개져 안치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원이 다른 여러 동아시아계 부족이 고대 야마토에서 뒤섞인 ‘공백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고고학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신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도미오마루야마 고분의 위치와 발견물이 ‘어떤 신’의 전승에 직결됨을 알아채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시작의 땅이라 여겨져 온 고대 야마토.
앞으로 도미오마루야마 고분의 발견은 일본사의 수정을 조용히 압박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일본인은 새로운 역사관을 받아들이고 미래로 발을 내디딜까요?
아니면 또다시 ‘없었던 일’로 하고 지금까지처럼 살아가려 할까요?

지금 선인들이 유물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글로벌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보다도, 차분히 발밑을 다시 바라보라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견딜 수 없습니다.
고대 유적을 돌아보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의지를 되묻기 위한 행위입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영어로,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일본 시간). 좋아요도 댓글도 순위도 없습니다. 에세이와 당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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