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EMA 2400Vol.24

TM MAGAZINE 2026년 10월 6일

시노다 마사히로의 『세토우치 소년 야구단』|맥아더의 아이들과 세토내해의 시간

시노다 마사히로의 『세토우치 소년 야구단』에서 교과서를 먹칠당한 섬의 아이들은 점령자의 놀이였던 야구를 자기들의 놀이로 바꿔 버린다. 영어 제목은 『MacArthur's Children』. 전쟁을 가장 정확하게 비추는 것은 그것을 올려다보던 아이의 눈이 아닐까.

전쟁을 가장 정확하게 비추는 것은 싸운 어른이 아니라, 그것을 올려다보던 아이의 눈이 아닐까. 전후 일본 영화를 돌이켜 보면 저는 늘 이 역설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소개한 시노다 마사히로(篠田正浩)는 그 점을 훌륭히 길어 올렸다고 느낍니다.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온 시노다 마사히로 가운데서 이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난 한 편을 꼽는다면, 그것은 『세토우치 소년 야구단(瀬戸内少年野球団)』(1984년)일 것입니다.

아이를 쓴 영화는 전쟁 전부터 일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시미즈 히로시(清水宏)는 아이를 다루는 천재라 불렸고, 1937년의 『바람 속의 아이들(風の中の子供)』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시미즈가 전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찍은 『벌집의 아이들(蜂の巣の子供たち)』(1948년)에서는 실제 전쟁고아들이 화면을 달렸습니다. 아이의 영화는 패전을 경계로, 천진함을 찍는 것에서 시대의 상처를 찍는 것으로 조용히 성격을 바꾸어 갔던 것입니다.

어른보다 아이가 전쟁을 더 잘 비춘다. 그 관점에서 전후에는 아역을 쓴 작품이 점차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한편 단순히 아이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눈에 비친 세계를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 그 주위는 엄선된 배우들이 굳혀 왔습니다. 아이를 한가운데 두는 영화일수록 곁의 어른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시노다 마사히로의 맹우 오시마 나기사(大島渚)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시마는 가난한 한국 소년의 일기를 소재로 한 단편 『윤복이의 일기(ユンボギの日記)』(1965년)를 만들었고, 이어 이름 높은 『소년(少年)』(1969년)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소년』은 아이를 이용한 고의 교통사고 사기라는 실제 사건을 좇아, 전국 각지를 떠도는 한 가족을 따라간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도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남자가 아버지로 등장합니다.

이 『소년』의 각본을 쓴 사람이 다무라 쓰토무(田村孟)이고, 그 다무라가 15년 뒤 『세토우치 소년 야구단』의 각본을 맡게 됩니다. 같은 작가의 붓이, 한쪽에서는 일본 열도를 계속 떠도는 가족을, 다른 한쪽에서는 섬에 머무는 아이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조에 두 감독의 자질의 차이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고 보며, 작풍 이상으로 전쟁 경험을 어떻게 표현했는가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오시마는 아이를 통해 사회의 폭력을 제기했고, 시노다는 아이를 통해 땅의 시간을 길어 올렸던 것입니다.

『세토우치 소년 야구단』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닙니다. 그 배후에는 패전과 점령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실제로 영어 제목을 『MacArthur’s Children(맥아더의 아이들)』이라 붙인 것이 그 그림자의 정체를 분명히 말해 줍니다. 일본어판에서는 『세토우치 소년 야구단』, 영어판에서는 『MacArthur’s Children』. 반골 정신 넘치는 시대의 영화인다운 발상입니다만, 그 이상으로 이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세토내해에 면한 아와지섬(淡路島)의 한적한 시골입니다. 원작은 이 섬에서 소년 시절을 보낸 아쿠 유(阿久悠)의 소설로, 1945년 9월, 전후의 섬에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서 펼쳐집니다. 전쟁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를 전범으로 끌려가게 한 여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이, 모든 것이 휩쓸려 가는 전후의 어쩔 도리 없음 속에서 이어집니다.

이 세계관을 성립시키기 위해 발탁된 사람이 교사 역의 나쓰메 마사코(夏目雅子)입니다. 젊어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모습에는 끝나 가는 것만이 지니는 맑은 빛이 있습니다. 보는 쪽이 그 뒤의 운명을 알아 버린 지금, 그 빛은 한층 애절하게 비칩니다.

그리고 카메라맨은 명인 미야가와 가즈오(宮川一夫). 일본 영화의 영상 문법을 만든 중추라 할 만한 미야가와가 여기서도 세토내해와 점령이라는 보이지 않는 겹침을 훌륭히 그려 냈습니다.

작중에는 윗선의 명령으로 교과서가 갑자기 검게 칠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제까지 옳다고 여겨지던 말을, 아이들은 자기 손으로 먹 속에 가라앉혀 갑니다. 가치가 하룻밤에 뒤집히는 경험을, 그 세대는 몸으로 익혔던 것입니다. 먹 아래로 사라진 것은 글자만이 아니라 ‘믿는다’는 것 자체의 발판이었습니다. 아이들 자신이 겪어 온 그 기억을 영상으로 좇으면서, 이야기는 어느 순간 불쑥 야구를 한다는 모티프로 향해 갑니다.

거기에 겹치는 베이스볼. 시노다 마사히로가 당시 패전 뒤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점령자의 놀이였던 야구를, 섬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놀이로 바꾸어 버립니다. 교과서를 칠해 지워야 했던 맥아더의 아이들이 이번에는 하얀 공이라는 새로운 말을 손에 넣습니다. 그 비약의 빠르기야말로 전후라는 시대의 진짜 감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거스를 길 없이 흘러가지만, 세토내해의 시간은 잔잔히 흐릅니다.

이 대비야말로 이 영화의 묘미입니다. 점령이라는 거대한 힘이 섬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바다는 여느 때처럼 고요하고, 아이들은 하얀 공을 쫓습니다. 시노다 마사히로는 역사의 격류와, 그것과는 무관하게 계속 흐르는 땅의 시간을 같은 화면 안에 겹쳐 보였습니다. 나라는 패하고 말은 다시 칠해졌어도, 밀물과 썰물까지는 누구도 명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 자신,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세토내해를 찾아왔습니다. 지금도 세토내해에 흐르는 이 시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영어로,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일본 시간). 좋아요도 댓글도 순위도 없습니다. 에세이와 당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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