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EMA 2400Vol.21

TM MAGAZINE 2026년 9월 15일

미야가와 가즈오의 '긴노코시'는 이치카와 곤의 『오토우토』(1960)에서 태어났다

컬러 텔레비전 본방송이 시작된 1960년, 이치카와 곤은 미야가와 가즈오에게 '다이쇼의 공기를 색으로 만들어 달라'고 한 마디만 의뢰했다. 미야가와는 은을 제거하는 처리를 일부러 생략했고, 훗날 '긴노코시'로 알려질 기법을 낳는다. 『오토우토』가 택한 것은 색을 갖지 않은 다이쇼다.

이번에는 90년대에 할리우드 영화 『세븐』(1995년)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쓰인 ‘하나의 기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이 겪지 않은 시대를 그릴 때 이보다 알맞은 표현은 없다고 극찬받은 이 기법은, 어느 일본인 촬영기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탄생의 해는 1960년. 이해 9월 10일, 일본에서 컬러 텔레비전 본방송이 시작되어 NHK, 닛폰 TV, 라디오 도쿄 TV, 아사히 방송, 요미우리 TV 다섯 방송국이 도쿄와 오사카에서 일제히 색을 내보내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안방의 영상이 컬러가 되고 마침내 흑백이 과거의 것이 되려는 가운데, 텔레비전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감성을 구하며 한 영화인이 격렬한 내적 격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이치카와 곤(市川崑) 감독입니다. 그리고 컬러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고 불과 두 달 뒤인 11월 1일, 다이에이(大映)가 컬러 텔레비전 시대의 영화로서 내민 작품이 『오토우토(おとうと, 동생)』였습니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저는 말로 하기 어려운 슬픔을 품은 향수를 느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존재했던 시대이면서, 저 자신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시대였습니다. 그 흔적은 일본에서 사라졌지만 대대로 이야기되어 온 황금시대. 그 시대란 바로 대정(大正)입니다.

이 작품의 무대는 대정 15년이라는 마지막 시대를 그리고 있으며, 회색의 두꺼운 구름으로 뒤덮이는 쇼와(昭和)가 막 시동을 거는 마지막 한때입니다. 말하자면 가장 그리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소설이라면 모르되 영상이 되면, 컬러로는 현대적이 되어 버려서 아무래도 대정의 ‘그 느낌’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치카와 곤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어느 인물에게 무리한 부탁을 합니다. 그가 바로 촬영기사 미야가와 가즈오(宮川一夫)입니다.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 등 명감독들이 소중히 여긴 일본 영화 황금시대의 오른팔이라고 하면 틀림없이 미야가와 가즈오입니다. 감독의 구상을 영상으로 번역하고, 의도를 헤아리면서, 상상을 뛰어넘는 영상을 잘라 냅니다. 이 촬영기사가 없었다면 일본의 명작은 태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촬영기사란 그저 감독에게 따라 찍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시의 촬영기사는 스스로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영상을 붙잡아, 작품도 작풍도 해치지 않고, 말로 전해지지 않는 작품의 본질을 조용히 필름에 새겨 넣는 일이었습니다. 이치카와 곤은 남다른 마음을 담아 미야가와 가즈오에게 한마디를 건넵니다.

“대정의 공기를 색으로 만들어 주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실은 대정 15년은 이치카와 곤 자신이 태어난 해이며, 그 자신도 대정을 직접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급속히 군국주의화하는 일본 속에서 대정 모더니즘의 기운을 지워 버린 어른들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시대를 더듬어 찾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터무니없는 주문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야가와 가즈오만이 할 수 있는 큰일이었습니다. 미야가와 가즈오는 메이지 후기인 1908년생이며, 대정 시대는 그의 젊은 시절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교토시 가와라마치 오이케로, 뼛속까지 교토 사람입니다.

미야가와 가즈오가 영화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열여덟 살 때, 닛카쓰(日活) 교토에 현상부 조수로 입사한 것이 계기였고, 거기서 3년간의 견습 수업을 거쳐 촬영부로 옮겼습니다. 곧 미야가와가 닛카쓰에 입사한 것도 대정 15년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는 대정 말기에서 쇼와 초기에 걸친 현상소의 냄새도 분위기도 모두 속속들이 아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대정 15년을 건 커다란 도전에 응하고자 미야가와는 고뇌에 고뇌를 거듭한 끝에 하나의 기법을 떠올립니다. 그것이 훗날 ‘긴노코시(銀残し)‘로 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컬러 필름이란, 노광된 은이 현상 때 반응하고 거기에 발색제가 결합하여 색소 화상을 만드는 기법인데, 마지막에 역할을 마친 은을 표백하여 씻어 내지 않으면 발색이 나오지 않습니다. 즉 색만 남기고 은을 버리는 것이 통상의 컬러 현상이라 불리는 기법입니다. 한편 미야가와는 마지막 단계에서 은을 제거하는 처리를 일부러 생략했습니다. 그 결과 발색이 억제되고 은에 의해 어두운 부분이 가라앉아 대비가 강해졌으며, 채도가 낮은 깊고 떫은 색이 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잘 익은 감과 떫은 감의 색조 차이 같다고 할까요. 영어로 블리치 바이패스(bleach bypass)라 불리는 그대로, 표백을 그냥 지나치게 할 뿐인 이야기입니다. 즉 실은 뺄셈의 미학에서 태어난 획기적인 기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미야가와는, 이것은 촬영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준비해 두지 않으면 이 대정의 마지막 감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미야가와가 상담한 상대가 도쿄현상소(東京現像所)입니다. 1955년에 도요현상소(東洋現像所, 현 IMAGICA)에 대항하는 대규모 현상소로 설립된 곳으로, 하나의 해답에 이르렀습니다. 안타깝게도 도쿄현상소는 영화 산업이 디지털로 이행함에 따라 2023년 11월 말에 모든 사업을 종료했습니다.

한편 처음 이 작품을 보면, 아마 머릿속에 그리던 ‘대정’의 색조와는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대정은 대정 모더니즘이며, 게다가 그 모더니즘은 쇼와적 해석에 의해 세워진, 이른바 후세의 감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적극적으로 내세워진 것은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의 붉은색, 카페의 불빛, 스테인드글라스, 모던 걸의 화려함이라는 극채색의 대정이었지만, 실제로 대정을 산 미야가와 가즈오는 대정에 두 얼굴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눅눅한 일본 가옥의 어둠과 결핵 병동의 흰색이라는, 색을 갖지 않는 대정입니다. 『오토우토』가 택한 것은 분명히 후자입니다. 고다 아야(幸田文)의 자전적 소설을 미즈키 요코(水木洋子)가 각색했으며, 작가인 아버지와 계모 밑에서 불량해져 가는 동생과 그를 감싸는 누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동생은 결핵으로 쓰러져 남은 수명을 깎아 나갑니다. 1960년의 일본인이 대정을 떠올릴 때 거기에 있었던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집 안에서 사람이 죽어 가던 시대의 기억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대정 모더니즘이라는 미화된 시대에 대한 반항이며, 철저하게 또 다른 대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배우진도 훌륭합니다. 누나는 최근 세상을 떠난 기시 게이코(岸惠子), 동생은 가와구치 히로시(川口浩), 어머니는 다나카 기누요(田中絹代), 아버지는 모리 마사유키(森雅之)입니다. 다나카와 모리는 대정을 산 배우이고, 기시와 가와구치는 쇼와 세대입니다.

‘그 느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영상. 그것은 대정 15년을 영상의 마술로 되살리려 한 이치카와 곤의 감성에, 장인과 실험 정신이 풍부했던 시대의 일본 기업이 교차한 걸작입니다. 세상이 실버 위크의 들뜬 기분에 접어들려는 때에는 무거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도 반드시 ‘긴노코시’ 같은 두 얼굴이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영어로,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일본 시간). 좋아요도 댓글도 순위도 없습니다. 에세이와 당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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