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 MAGAZINE 2026년 6월 23일
호스피탈리티란 무엇인가|단 한 사람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되는 미완의 관계
호스피탈리티란 '단 한 사람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되는 미완의 관계'다. 서비스는 '일대다'를 전제로 하여 정답이 있지만, 호스피탈리티는 '일대일'이라 정답이 없다. 호스피탈리티의 정신이 문화로 승화된 것이 한때 목숨을 걸었던 세계, 다도였다.
눈앞의 ‘단 한 사람’과 철저히 마주하고, 그 사람이 안고 있는 진짜 고민과 과제를 헤아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는 행위.
본래 인간의 일이었을 텐데, 오늘날에는 눈앞의 사람은 보지 못하고 그 뒤에 존재하지도 않는 불특정 다수에 눈이 먼 사람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신문, 잡지, 만화, 게임, 텔레비전 같은 미디어의 황금시대를 거쳐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의 침투와 함께 퍼진 문명의 부채인데, 지금 사람들이 크게 양극화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균열의 가장자리를 만들어 낸 것은 지나치게 앞서 나간 알고리즘과 AI입니다.
하나는 철저하게 단 한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 둘은 눈앞의 단 한 사람을 거칠게 대하고 다수에 끌려가 버리는 사람. 개인적으로 후자는 사리사욕에 져서 내용의 깊이와 속 깊음이 아니라 스타일만 쫓는 사람에게서 두드러진다고 보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바깥에서 답을 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편 전자는 철저하게 눈앞의 단 한 사람을 볼 수 있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생성되는 자리에서 그 순간 자신이 지닌 능력을 남김없이 바쳐 정성을 다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나름대로 계속 관찰한 끝에, 그들이 답을 바깥에서 구하지 않고 안을 갈고닦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주제는 앞으로 다시 주목받겠지만, 여기서 늘 떠오르는 것은 9년 전부터 부지런히 드나드는 요릿집입니다. 젊은 주인장과 안주인 두 사람이 꾸려 가는 가게인데, 훌륭하다고 느낀 것은 처음 찾았을 때였습니다.
처음 젓가락을 쥔 순간, 제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본 안주인이 즉시 모든 배치를 왼손잡이용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도 상대를 보고 마음을 쓴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가게는 몇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데, 놀랍게도 맛이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외식업은 생존 경쟁이 치열한 탓에 도중에 자신의 신념을 잊고 확장이나 효율화로 내달려 성패가 갈립니다.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드나드는 단골은 가게의 모습과 맛을 통해 ‘주인이 달라졌다’는 것을 순식간에 알아챕니다. 그런데 이 가게는 내년이면 10년을 맞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도심의 유명 가게들이 외화를 가진 외국인 여행자에게 기울어 단골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고 이익을 우선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 가게에는 그런 일도 없고, 매체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으며, SNS도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작법과는 정반대의 자리에 있지만, 찾을 때마다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요리는 지금의 일본에서 드물 것입니다.
그렇게 ‘단 한 사람을 보는’ 주인장과 안주인의 마음은 가게의 모습에 비치고, 세월과 함께 포렴, 분위기, 몸가짐, 맛 같은 모든 것에 밑바닥부터 스며들어 마침내 모든 것을 감쌉니다. 이것이 본래 일본이 지니고 있던 풍요로움이자 아름다움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간사이 굴지의 요정에서 수련한 주인장은 당연히 요리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요정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고객 대장입니다.
9년 치 역사가 담긴 두툼한 종이 고객 대장에는 개업 당시부터 찾아온 손님에게 내어 놓은 모든 요리와 손님의 취향 등이 손글씨로 꼼꼼히 적혀 있는데, 주인장은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은 대장을 집에 두고 온 것을 알아차리고 안주인에게 집까지 가서 가져다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날 지진이 났을 때 장어집은 비법 양념을, 상점은 고객 대장을 들고 나왔듯이, 본래 돈이나 자산보다 소중한 것은 고객과의 관계를 기록한 역사였음을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보여 준 적이 없다는 대장인데, 이 가게에는 비효율·비확장이라는, 지나치게 앞서 나간 오늘날에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린 ‘일본의 호스피탈리티’가 여기에 깃들어 있습니다.
저는 호스피탈리티를 ‘단 한 사람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되는 미완의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서비스는 ‘일대다’를 전제로 하며, 게다가 그 ‘하나’는 대체 가능해야 합니다. 반면 호스피탈리티는 ‘일대일’이며, ‘하나’는 서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서비스에는 사회적으로, 혹은 시류에 따른 정답이 있고, 제공하는 쪽은 고객에게 그 정답을 건네줌으로써 만족을 연출하지만, 호스피탈리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호스피탈리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다’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스피탈리티의 세계는 느슨한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손님의 관계이며, 동시에 적대 관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호스피탈리티의 어원은 라틴어 hostis(적)입니다.
다만 적이란 ‘이인(異人)’, ‘낯선 사람’을 뜻합니다. 훗날 영어 hostile은 ‘적의’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지만, 본래는 마주한 상대가 자신과 다른 적이기에 철저히 마음을 다해 환대한다는 세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는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호스피탈리티는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죽음으로 곧장 이어지는 가혹한 세계입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각오를 다질 필요는 없어도, 호스피탈리티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고, 마주한 상대가 정말로 바라는 것을 앞서 붙잡아 준비하고 내어 놓습니다. 즉, 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 정신이 문화적으로 승화된 것이 다도입니다.
지금의 다도로는 상상도 되지 않지만, 옛 다도는 목숨을 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현장이었습니다. 한 잔의 차를 입에 대는 일은 일상을 생사의 벼랑 끝에 두는 사람에게는 안식이었고, 동시에 평소의 마음가짐이 드러나는 가차 없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이기적으로 살다가 다회 때만 평소와 다른 언행을 마음먹고 해 보아도, 겉만 꾸민 그 마음의 틈은 다실에서 무참히 드러나고 맙니다.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승부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인과 무사는 평소부터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다가올 때에 계속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사카이 상인에게 원류를 둔 다케노 조오(武野紹鴎)와 센노 리큐(千利休) 같은 다인은 다음 세대의 패권을 둘러싼 세계에 사는 무사, 상인, 선교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때로 적끼리 마주 앉는 자리에서 한 잔의 차를 우렸습니다.
이 시대의 차는 지금처럼 취미나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만 잘못하면 할복해야 하는 세계였습니다. 다도의 개조로 자리매김한 센노 리큐가 무사가 아니었음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할복을 명받은 것이 상징적인데, 온갖 속셈이 소용돌이치는 한가운데서 정신을 가라앉히고 손님과 마주하는 다인의 기술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차는 명나라 선승의 사상이 반영된 차를 원류로 지니고 있습니다. 차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그때 그 순간 마주한 상대를 철저히 응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잃지 않고 환대하는 마음의 여백이 낳은 지고의 문화자본입니다.
그 순간 적과 아군의 분리(支離)가 사라지고 상반공존(相反共存)의 경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무사가 다의 길에 심취한 진짜 마음이었습니다.
이윽고 다도는 유파로 갈라지고 유파의 격식에 얽매여 형해화되었는데, 그것은 선인의 차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작법이라는 규칙을 체계화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유파와의 비교로 눈길을 돌린 순간, 눈앞의 손님에게 우려 내는 한 잔의 차에서 손님의 얼굴이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제자의 수와 다회의 수를 겨루는 불모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다도는 ‘단 한 사람을 보는’ 행위를 잃어 갔습니다.
이런 일은 다도에 그치지 않고 흔히 일어나지만, 지금 다시 우리가 ‘전통문화’라 불리는 갖가지 것에서 돌아보아야 할 것은 형태로 남은 문화를 사수하는 일이 아니라 형태 없는 문화일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일본의 선인들이 길러 내고 이어 온 진짜 일본 문화가 있습니다.
끊어질 것은 끊어지고, 남을 것은 남는다.
분명 그것은 하나의 진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과에 눈길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의 흔적에 눈길을 두었을 때, 우리는 160년 동안 멈춰 있던 시계바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