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숲Vol.7

TM MAGAZINE 2026년 6월 9일

패왕차희 CHAGEE의 서울 진출과 1997년에 갈린 한일의 운명

2022년 1인당 명목 GDP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다. 1997년 한국은 사실상의 국가 재정 파탄에서 극약 처방에 성공했고, 일본은 변혁의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지금 서울에는 중국의 패왕차희(CHAGEE)가 진출해 한 달 안에 5개 매장 체제를 갖췄다.

사흘 남짓 서울을 걷다 보면, 짧은 기간에 온갖 면에서 일본이 이웃 나라에 추월당했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느낍니다.
감각으로 말하자면, 한국은 일본의 쇼와(昭和)에서 단숨에 레이와(令和)가 된 것 같고, 헤이세이(平成)를 대담하게 압축하면서 쇼와의 틀을 레이와로 강제로 덮어쓴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2022년에 1인당 명목 GDP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고, 최근 몇 년 사이 국가 주도의 디지털화가 가속하고 있습니다. 또 1인당 구매력평가(PPP) GDP에서도 2010년대 후반에 한국이 일본을 역전했으며, 그 차이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관광지에 가면 한국인 여행자가 많은 것만 보아도 수긍이 가는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여권 보유율을 보아도, 일본의 18.4%(2025년 말 시점)에 비해 한국은 약 60%(2025년 3월)로 매우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국내만으로는 완결되지 않는 인생을 전제로, 여러 방면에 위험을 분산하는 의미도 겸해 한국인이 미래를 모색하고 있는 모습의 반영입니다.

국가적인 가상의 적, 곧 이웃 나라 북한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마찬가지로 가상의 적인 중국을 안고 있는 대만에서도 국민의 여권 보유율은 60%를 넘습니다. 이들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여권을 갖는 것은 단순히 해외여행이나 해외 진출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국가의 미래와 자기 자신의 미래를 겹쳐 놓지 않는다는 증거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일본인의 여권 보유율이 낮은 것은 ‘내향적’이어서가 아니라,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쇼와의 환상에 많은 국민이 아직도 기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인은 자신의 미래와 국가의 미래를 겹쳐서 생각하고 있다고 늘 느낍니다. 여기에 성가신 사상적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의 미래’라고 입에 올릴 때, 대다수의 사람은 정부를 축으로 하는 관료 시스템의 국가, 곧 일본을 가리킵니다. 분명 이 시스템에서의 일본의 미래에는 먹구름이 드리워 있고, 머지않아 붕괴하리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 겹쳐야 할 도리도 의리도 없습니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곧 일본의 관료 시스템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별을 일본 국민은 하지 못합니다.

한국과 대만의 국민은 이 점을 분명하게 가릅니다.
한국의 경우 1997년에 일어난 아시아 외환위기로 사실상의 국가 부도를 겪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에 긴급 금융 지원을 요청해 파산은 간신히 피했지만, 1998년부터 시작된 IMF의 가혹한 긴축 재정 요구에 맞서 국민이 집에 있는 자산을 나라에 바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자신이 가진 금과 반지 등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정부에 기부해 어떻게든 국가를 쇄신하려 한 쓰라린 경험입니다.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니, 이 경험은 지금 현역인 한국인 세대 다수의 뼛속에 스며 있습니다.

이 재정 위기를 계기로 한국은 낡은 시스템의 수호자였던 재벌을 일소하고, 새로운 국가 형성으로서 불투명했던 구조의 쇄신에 착수했습니다. 대담한 구조 개혁과 IT 산업으로의 전환, 그리고 수출력을 높이는 ‘공세적 국가 전략’을 무기로, 예정보다 앞당겨 2001년 8월에 IMF 차입금 총 약 195억 달러를 전액 상환하는 기적적인 부활을 이뤘습니다.

근본적인 쇄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 최상위권의 위정자였던 대우그룹 등이 도산했고, 살아남은 삼성과 현대그룹은 글로벌 진출을 가속했습니다. 한편 IMF의 지도 아래 사회의 ‘평생 고용이 붕괴’하고 대량 해고가 일제히 단행되면서 실업률이 급등했습니다. 이 부(負)의 유산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혹한 입시 경쟁과 극단적인 저출생의 먼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국 현대사에서 배울 것은, 한국인이 국가에 미래를 맡기던 종래의 태도를 버리고 정신을 차렸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21세기에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진짜 힘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그것은 사회의 투명성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대통령이라도 부패에 대한 추궁이 작동하지만 일본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습니다. 곧 일본에서 국민이 주권을 얻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법 정비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자신의 미래를 겹치지 않는 개개인의 결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재정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국민과 기업은 국내 시장만으로 안정되는 사회가 환상임을 몸으로 이해했고, 국내에 의존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글로벌 의식이 싹텄는데, 때마침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세계화를 가속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의 파도를 탄 한국은 여기서부터 글로벌 전략으로 크게 키를 돌렸습니다.

또 국가 재정 위기로 정신을 차린 국민 중에는 미래를 위해 한 번 나라를 떠나기로 결단한 이가 많았고, 미국 서해안에 코리아타운을 이루어 국가 쇠망의 위기를 피하면서 모국 재건의 때를 위해 준비에 힘썼습니다.
이윽고 코리아타운에서 자란 이민 2세 젊은이들이 지금의 K-POP, K-드라마, K-영화 같은 한류 콘텐츠를 만드는 문화의 핵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서해안에서 미국식 글로벌 마케팅을 배우고 세계 유수의 에이전트 시스템을 받아들이며, 콘텐츠의 소재 자체는 부모의 모국인 한국에 두면서 시간을 들여 세계를 석권했습니다.

한편 구태의연한 시스템을 벗어난 한국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의 미래에 자신의 미래를 겹치는 위험을 몸으로 알고 있기에, 개인의 풍요로운 삶이 한국의 미래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서울 시내를 거닐면 거리 풍경과 분위기는 20세기적인 도시인데, 도시의 ‘보이지 않는 OS’는 21세기형으로 업데이트되어 있어서, 디지털 사회 하나만 보아도 일본은 미치지 못합니다.

이번에 한국의 디지털 정책에서 받은 인상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추어 계단을 오르듯 신중하게 나아가지 않고, 국가 지도자의 주도로 대담한 디지털 개혁을 추진하고 거기에 국민이 적응하는 방식을 택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고령층에게는 힘든 일이지만 익숙해지면 그만이며,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이들은 그 영향으로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도 생활을 이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도시는 공동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미래입니다. 미래란 예전에 SF 영화에 그려진 ‘미래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세계선(世界線)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상에 선 이의 결단으로 열려 갑니다.

일본의 경우 디지털 정책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특히 표의 핵심인 고령층에 맞추는 데 주안을 두기에 계단을 천천히 오르듯 신중하게 나아갑니다. 게다가 계단을 오르려면 난간과 단차에 대한 배려를 먼저 갖추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그를 위한 회의가 몇 번이고 열리며, 추락했을 때의 보험과 법 정비가 먼저 검토됩니다.
그 결과 디지털 기술의 가속적인 진전에 완전히 뒤처져 세계 유수의 디지털 후진국이 되었고, 국내에서는 디지털 네이티브가 자라지 못하며, 오히려 일본은 젊은 층의 디지털 기술 이해도가 더 낮다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한국, 중국은 유교 문화권으로서 생각해야 하는 특수한 지역입니다. 유교에는 지도자의 인격이 그대로 국민 생활에 반영되어 개인의 풍요를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 근본에 있으며, 선두에 선 이는 날마다 배우기를 계속하고 새로운 경험과 가치관을 받아들여 개혁을 이끌 책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97년은 동아시아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같은 해 일본에서는 야마이치증권이 파산했고, 1985년에 시작된 버블 경제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러나 고도 경제성장기에 쌓아 둔 자산이 막대했던 일본은 얄궂게도 한국 같은 국가 부도에 직면하지 않았고, 버블 붕괴 뒤에도 위정자의 기득권이 지켜진 데다, 국민이 쌓아 온 나라의 저금을 헐어 쓰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나쁜 미래로 키를 돌려 왔습니다.
또 기능 부전에 빠진 관료주의는 2001년 중앙성청 재편 때 정치와 결탁해 살아남았고, 오늘날은 관료주의가 정치를 웃도는 수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해에 일본은 변혁의 마지막 기회를 놓쳤고, 한국은 극약 처방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답 맞추기가 30년이 지난 지금 뚜렷한 차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낡은 시스템의 해체와 IT·글로벌화로의 전환’에 성공한 한국과 실패한 일본.

그로부터 30년이 지나가려 합니다.
그동안 한국은 소프트파워 콘텐츠 전략으로 세계를 정복했고, 일본은 자니스 문제로 몰락했습니다. 그리고 여권을 갖고 구매력이 높은 한국 젊은이들은 잇따라 일본을 찾아 새로운 소재를 사들여 모국으로 가져가서는 연달아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징이 스페셜티 커피입니다.
2023년 무렵 단골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에 가 보고 젊은 한국인 여행자가 많아 놀랐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한국에서는 좋은 스페셜티 커피를 마실 수 없어서 일본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 전의 이야기도 이미 먼 옛날 이야기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카페의 생존 경쟁이 가장 치열한 서울에서는 새 카페가 연달아 생겨났다가 사라지며, 빠른 속도로 도태시키면서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카페의 수는 비정상적이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카페가 서서히 개인화로 옮겨 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예감이 듭니다.
그 배경에는 뜻밖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이 중국입니다.

한국에 스며드는 중국의 조용한 기척.
그 상징적인 존재가 ‘패왕차희(CHAGEE)‘입니다.

2017년 중국 윈난성에서 창업한 모던 프리미엄 티 브랜드는 순식간에 중국 본토를 석권했고, 2026년 4월 30일에는 놀랍게도 서울 시내에 3개 매장을 동시에 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쇼핑을 즐기는 강남, 대학생이 많은 신촌, 근래 재개발 계획의 중심인 용산에 등장한 CHAGEE는 눈 깜짝할 사이에 유행에 민감한 한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자 이어서 5월 21~22일에 CHAGEE는 서울 시내에 2개 매장을 더 열었습니다. 한국 상륙 후 한 달 이내에 무려 5개 매장 체제를 갖춘 것입니다.

CHAGEE는 이미 중국 본토에 7,000개가 넘는 매장이 있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미국,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즉 일본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 이유를 중일 관계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렇지 않고, 현실은 일본인 1인당 구매력이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비해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주말에 서울 시내의 CHAGEE에 가 보면 유행에 민감한 일본인 여행자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들은 지금 서울을 찾아와 중국 브랜드인 CHAGEE에 발걸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CHAGEE는 전개 속도도 현대적이지만 온라인화를 가속하고 있으며,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에 대응할 수 있는 풍부한 옵션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게다가 불과 한 달 사이에 여행자, 쇼핑 목적의 젊은이, 대학생, 비즈니스맨 등 모든 고객층이 움직이는 지역에 출점했습니다.

주변에는 미국 세계화의 상징인 스타벅스가 무수히 있지만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강해서, 미국의 종언과 중국의 아시아 부상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흥미롭게도 CHAGEE는 브랜드 로고와 디자인을 포함해 스타벅스 매장을 그대로 이어받아 쓸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계해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스타벅스는 포화 상태이고, 일본에서도 한낱 자습실이 되어 브랜드 가치가 없습니다.
원래 스타벅스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문화를 미국화한 커피로 세계를 석권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감성이었습니다. 반면 CHAGEE는 중국이 본고장인 차 문화를 재해석해 제안하기에 세계적인 커피 버블의 시세 변동에 좌우되지 않으며, 세계화의 단맛만을 교묘하게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한류 콘텐츠는 포화 상태가 되어 세계적으로 굽이를 맞이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상징하듯,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조용히 서울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한국의 모습은 모든 관점에서 미국과 거리를 두고 이웃 나라 중국과의 21세기적인 마주함을 모색하기 시작한 새로운 국가상으로 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의 한국은 아시아의 탄광 속 카나리아입니다.

앞으로 한국은 중국의 영향을 착실히 받으면서 업데이트를 시도하겠지만, 다음 쇄신에 성공하면 한반도 통일이 실현되어 한국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저출생, 정체, 작은 시장 규모가 해소될 것이며, 게다가 북한의 군사 기술과 한국의 고도화된 산업 구조가 얽히고, 그 뒤에 최첨단 기술 기반을 가진 중국을 둔 구조로 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금세기 안에 한국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진화를 이룰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궁지에 몰리는 것은 일본입니다. 아직도 미국과 거리를 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중국과의 교제도 엉성합니다. 디지털 후진국이 되었고, 국민 대다수는 여권조차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한일의 미래는 결정되었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시작된 고속의 지각 변동. 일본의 젊은이가 부지런히 한국을 드나들듯,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다음 국가상을 진지하게 배워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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