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숲Vol.12

TM MAGAZINE 2026년 7월 14일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거듭된 방일|일본은 미국 국채를 팔 수 없고 재정 주권이 없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1년 남짓한 사이에 세 번이나 일본을 찾았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미국 국채 채권자이지만, 일본 정부도 일본은행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미국 국채를 팔 수 없다. 일본 정부는 국민의 얼굴이 아니라 워싱턴의 얼굴을 보고 있다.

적대할 필요가 없는 상대를 도발해 놓고,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뗍니다.
대항해 시대 이래 서구 열강이 되풀이해 온 이 행동을, 지금 일본 정부는 뼛속까지 배어들게 하여 스스로는 극복하지 못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대전제로서 ‘적’이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지극히 서구적입니다.
그리고 현대 서구적인 ‘적’은 대화를 거부해야 할 상대이며, 멸시해야 할 악이라고 간주됩니다. 식민지 시대에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에게 야만, 미개 같은 딱지를 붙이고 점령을 차례로 정당화했던 모습과 같습니다. 그것이 지금 서방 국가들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했고,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는 일은 500년 전부터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교묘해졌습니다. 그 원동력은 자신의 특권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본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폭거입니다.
동아시아 유사시는 미국 정부 일부의 이권과 강하게 맞물려 있고, 여기에 정세를 불안하게 만드는 병원(病原)이 있습니다. 당연히 거기에 기생하는 일본 정부의 일부도, 나아가 중국 정부의 일부도 같은 부류입니다.

이때 정말로 보아야 할 것은 ‘적이다!’라고 지목된 순간, 누구의 손가락이 그 가상의 적을 가리키고 있는가입니다.
여기에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이권이라는 복잡한 구조가 있고, 더구나 그것 자체가 전후 일본의 대미 복종에까지 곧장 뻗어 있습니다.

국가나 집단의 차원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래도 ‘주권’은 계속 물어야 하고, 계속 제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일이 최근에도 일어났습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가 올해 1월 다보스 포럼에서 일본의 재무대신을 호되게 질책하며 “미국 국채를 멋대로 팔지 말라”는 협박을 했습니다.
가까이는 5월에도 베센트는 일본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1년 남짓한 사이에 세 번이나 방일해 총리·재무대신·일본은행 총재를 한 사람씩 따로 만났습니다. 쐐기를 박으러 왔다고 보아야 할 심각한 사안입니다. 메시지는 “(미국의) 허락 없이 멋대로 하지 말라”입니다.
일본의 재정 주권을 명백히 빼앗고 있는 당사자인데도, 일본 언론은 그를 ‘대단한 친일파’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미국 국채 채권자입니다.
그것은 미국 재정을 떠받치는 구조의 왜곡이며, 게다가 미국 재무장관이 집요하게 일본을 찾아와 일본의 재정 주권은 무시한 채 미국 재정을 계속 떠받치라고 협박합니다. 이토록 주권을 무시한 예속을 강요하는 명백한 언동이 외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파멸적인 엔저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 쪽은 미국 국채를 내놓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도 일본은행도 미국의 허락 없이는 미국 국채를 팔 수 없습니다.
미국 국채를 팔면 미국의 금리가 치솟으므로, 사실상 미국에 대한 ‘불복종’ 선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 정부는 국민의 얼굴을 보지 않고 워싱턴의 얼굴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회에 어찌할 수 없는 허무감이 감도는 한 원인이 있습니다.

애초에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다른 나라인 일본에서 성대하게 축하받는 것 자체가 비정상입니다.
지금까지의 미일 관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미국의 속국, 아니 속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당당히 드러내는 일에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 안보투쟁으로 이어지는 반미 정신이 20세기 후반에는 아직 강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50년 전 독립 200주년은 1976년이었으므로 안보투쟁을 치른 세대가 아직 현역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런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GHQ의 일본 점령권이 재일 미군 요코타 기지로 계승되고, 거기서 반세기 넘게 걸려 국민의 길들이기가 진행된 지금은, 어느 정도 허술해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개인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허술함이 이번에 일본이 독립기념일을 성대하게 축하하는 모습에 드러나 있습니다. 미국이 서구로부터 주권을 되찾아 독립한 기념할 만한 축하의 날에, 주권을 박탈당한 채 주권을 갖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식민지로서 일본을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스미디어의 심장부인 전파권을 요코타 기지가 쥐고 있는 이상, 미디어는 진상을 전하지 않습니다.

국민 생활을 파괴하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일본 정부는 무언가 행동을 일으키기 전에 반드시 미국의 의향을 물어야 합니다.
제2차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은 미국을 위해 국민의 총동원도 마다하지 않는 방침이 되어, 사회를 천천히, 착실하게 피폐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이 시대를 맞이하기 전 마지막 구조적 전환점이었던 민주당 정권의 수립 때, 당시의 오자와 이치로와 하토야마 유키오는 이 구조를 해체하겠다고 분명히 선언했지만, ‘누군가’의 역린을 건드려 그들이 소유한 매스미디어에 의해 두 사람은 철저히 무대 중앙에서 도태되었습니다.

이렇게 민주당 정권은 괴멸했습니다. 순식간에 제2차 아베 정권이 시작되었고, 이후 자민당 세이와카이의 독무대가 되어 지금의 다카이치 총리로 이어집니다.
그녀가 아베 정권의 방침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말을 뒤집으면 ‘미국에 거스르지 않겠다’는 표명이며 ‘미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아베 정권에 이어 다카이치 정권도 국민 생활을 파괴하면서 그렇게 거둬들인 자금을 잇달아 미국을 위해 쏟아붓고 있습니다. 증세도 재무장도 미국을 위한 것이며, 거기에 일본 쪽의 주권은 없습니다. 주권은커녕 국민이 없습니다. 도대체 정치인과 관료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냉엄한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직시하고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한편, 두 번의 안보투쟁 패배에서 배울 수 있는 우리는 같은 방법을 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일본 사회는 젊은이가 다수파였는데도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일본 사회는 젊은이가 소수파이고, 게다가 당시의 견고한 좌익 이데올로기는 겉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SNS를 통해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좌익 조직에서는 ‘오르그(조직 공작)’ 수법이 철저히 쓰였는데, 지금은 이와 같은 일이 SNS 위에서 젊은이들을 잇달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알고리즘은 ‘오르그’와 극히 궁합이 좋습니다.
이런 방법을 ‘운동의 내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취약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사물은 이원론으로 움직이면 반드시 뒤집힙니다.
안보투쟁에서 패배한 젊은이들이 지금의 일본 사회를 형성한 당사자였다는 사실을 잊을 때,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미래가 한 걸음 가까워집니다.
이것은 전쟁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일본 정부에 대한 행동을 전개하는 수뇌부는 가까운 미래 군국주의에 영합하는 힘이 됩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역학의 정체를, 예전에 후카사쿠 긴지는 대히트 영화 『배틀 로얄』로 멋지게 제기했습니다.

앞으로 이것들을 대국적으로 보고 정말로 미래를 생각하는 운동의 지도자가 등장할지 여부가 초점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로서 많은 분이 놓치고 있는 것은, 사실 미국 쪽의 구조적 전환점이 가깝다는 점입니다.

다음 회에 이 부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상가 미쓰이 다카히로의 주간 에세이 Project 2049

영어로,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일본 시간). 좋아요도 댓글도 순위도 없습니다. 에세이와 당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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